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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시사평론> 연세대학교 작곡과 정종열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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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06.16 | 작성자 | 음악교육신문사 |
AI가 무서운 속도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제 어느 분야에서나 AI를 이야기하며 예술과 음악 역시더 이상 미래의 흥미로운 담론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와 마주하고 있다. 이미 상업음악에서는 AI 활용이 공공연한 현실이 되었고 순수음악과 현대음악 분야에 서도 그 가능성은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클래식 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에 변화의 속도가 덜 체감될 뿐, 머지않아 순수예술 역시 AI와 직접 충돌하게 될 가능성은 높다.
‘burn the bridge’라는 미국 관용어는 관계나 상황을 완전히 단절해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말로는 ‘배수진을 치다’ 정도에 가깝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통의 단절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시대를 돌아보면 이 표현은 특히 AI와 이를 대하는 순수예 술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적절하게 다가온다.
많은 연주자와 작곡가들은 AI 예술을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로 여기거나, 애써 외면하며 자신과 무관한 영역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마치, AI와의 연결 자체를 끊어버리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다리를 불태운다고 해서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
필자는 얼마 전 한 심사 과정에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지원 서류 중 창작곡이 포함된 공연 기획안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작곡가 이름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 확인한 사실은 공연 전체가 AI 가 작곡한 음악으로 구성된 기획이었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이전 해에도 같은 형식의 공연이 진행되었고 시민들의 긍정적인 반응까지 얻었다는 사실 이었다.
이후, 다른 기획안들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발견했 다. 작곡가의 이름이 없거나 있어도 AI가 만든 음악을 단순 수정하거나 사보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 이는 더 이상 ‘참신한 실험’ 수준이 아니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에 침투한 AI 시대의 단면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예술가들이 외면하는 사이, 예술과 무관한 기업이나 개인들이 AI 예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체감할 수 있었다.
연주 분야 역시 안전하지 않다. 기존 음악을 입력해 다른 스타일로 재생산하는 기술은 이미 일반화되고 있으며 대중 또한 이러한 결과물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 흐름을 주도하는 이들이 반드시 예술가 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비판했던 문화 산업의 확대와 순수예술의 위기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AI 산업이 예술 전반의 평준화와 표준화를 가속화하고 결국 순수예술의 약화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인류는 이전에도 비슷한 위기를 경험했다. 실용음악이 클래식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 디지털 매체가 서적 문화를 붕괴시킬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결국 인간은 새로운 기준과 감각을 만들어왔다. AI 시대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인간은 평균적이고 획일화된 예술에 오래 만족하지 못할 것이며 최종적인 선택과 판단 역시 결국 인간이 내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AI가 작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고 선택 하며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
오늘날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에서 중요한 것이 질문과 프롬프트 작성 능력이듯, 음악 AI에서도 변수 설정과 명령어 구성은 결과물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 다. 예술은 인간을 향해야 하며, 인간의 감각과 판단 없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음악가 피에르 불레즈와 에드가 바레즈는 이미 기술 진보의 시대 속에서 예술가가 새로운 기술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학과 예술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은 오늘날 더욱 현실적인 과제가 되었다.
예술가가 모든 기술 문제를 직접 해결할 필요는 없다. 기술의 흐름을 이해하고 자신의 예술 안에서 일부 라도 응용할 수 있다면 기술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다.
지금은 AI를 외면하며 ‘burn the bridge’ 할 시점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대와 연결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특히, 감각과 창의성이 뛰어난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영역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기술과 AI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예술 형태를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단계의 순간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