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육신문

태 국 의 거 장 감 독 아 피 찻 퐁 위 라 세 타 쿤 ( A p i c h a t p o n g Weerasethakul)의 영화 [엉클 분미]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칸 영화제에서 2010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스스로 영화광이라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이런 예술영화를 끝까지 보며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비슷한 경험은 문학에서도 있었다. 지난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책을 나도 서점에서 읽어보았다. 수상 소식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서점에서 책이 동이 날 정도로 팔렸지만, 정작 집에 가져가 끝까지 읽은 독자는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한강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와 주제의식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 작가가 여느 대중소설처럼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체로 소설을 썼다면, 과연 지금의 명성과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이 영화와 문학 뿐만 아니라 순수 예술로 구분되는 현대음악을 접한 청중들은 대체로 “어렵고 낯설다”, “이해하기 힘들다”, “듣기 불편하 다”와 같은 말을 한다. 이러한 평가는 종종 현대음악을 대중에게 외면 받는 음악으로 단정 짓고 규정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이러한 생각이 비단 현대음악에만 국한된 것일까?

 음악 뿐만 아니라 미술, 영화, 문학, 무용분야 등에서도 순수 예술은 그특성상 모호함과 난해함,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요소들은 순수 예술의 본질적인 조건이라 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모호함과 난해함은 순수 예술이 지닌 고유한 특성 중 하나라 하겠다.

 작곡가든 작가든 그들의 목적이 단순히 생각을 누군가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라면 굳이 예술이라는 표현 방식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정보를 글로 풀어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예술이 단순한 전달을 넘어선 무언가를 지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작가는 때로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내길 원하지 않거나 쉽게 파악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모호함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모호함 이나 난해함은 메시지를 겹겹이 감싸 숨기는 강력한 표현 방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오늘날 예술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로 구분된다. 대중예술은 대중의 기호와 선호를 바탕으로 다수의 공감과 즐거움을 목표로 한다. 반면, 순수예 술은 주로 소수의 마니아층이나 예술적 향유를 즐길 수 있는 교육을 받은 엘리트 집단에게 소비되고, 대중예술에 비해 작가의 개인적인 철학, 예술적 지향점, 그리고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연구와 탐구 과정에 더 높은 가치와 비중을 둔다고 할 수 있다. 즉,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에 있어 청중이나 관객의 층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쉽게 이해하고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패스트푸드형 예술을 좋아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여러 번 곱씹고 되새기며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숙성요리형 예술을 선호 한다. 그렇기에 순수예술을 즐기고 향유하는 이들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존재를 부정하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존재는 예술의 풍부 함과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대음악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서 관객이 적다는 지적에 깊이 공감하면서더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방법론적인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만 집착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곡의 스타일을 ‘친대중적’으로 바꾸거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명목으로 작곡가 스스로의 음악적 철학과 지향점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순수예술음악의 본질에 맞는지 의문이 든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지향점이 온전히 담긴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으로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순수예술음악 작곡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 일화는 클래식 애호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1913년 초연 당시, 공연장에 난동이 벌어질 만큼 충격적이었던 이 작품은 오늘날 어떻게 평가 받고 있을까? 이제 [봄의 제전]은 어엿한 ‘고전’으로 자리 잡아, 20세기 관현악곡의 핵심 레퍼토리로 손꼽히고 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혁신적인 작품이 받아들여지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현대음악은 기능화성을 중심으로 한 조성 체계가 붕괴되고 변형되며 탄생했다. 특히 1차, 2차 세계대전과 같은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변화는 가속 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의 기호가 아니라 예술가들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음악적 표준이 새롭게 정립되었고, 현대음악만의 독창적인 패러다임이 탄생했다.

 조성음악에 익숙한 청자에게 현대음악은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음향, 음색, 형식의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작곡가의 의도와 음악에 담긴 의미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해 프로그램 해설을 읽고 그 속에서 숨겨진 매력을 찾아보는 시도도 중요하다. 예술은 소통이며, 소통은 양방향이다. 작곡가에게 음악을 쉽게 이해시키라는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관객도 더 적극적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그 안의 매력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끝으로,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백종원과 함께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모수 서울의 안성재 오너셰프를 기억할 것이다. 그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를 기사에서 접한 적이 있다.

모수 서울의 점심 코스는 1인 21만 원, 저녁 코스는 37만 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상당한 이익을 낼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 다고 한다. 파인다이닝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 다고 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테이블 회전율을 통해 매출을 늘리는 일반 식당과 달리, 한 끼에 약 2시간이 소요되며 소수의 예약 손님만 받는 다. 여기에 고급 식재료 사용과 많은 인력 투입, 그리고 버려지는 재료의 비율까지 더해지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완벽한 서비스를 위해 주방부터 다이닝룸까지 동원되는 인건비, 고급 인테리어와 식기, 소품 등 부대비용 또한 상당하다. 그럼에도 왜 셰프들은 이런 경제적 한계를 감수하면서도 파인다이닝을 운영할까? 그것은 바로 셰프 개인의 음식에 대한 철학 때문이다. 파인다이닝은 셰프의 자기표현이자 인생 최고의 목표로 여겨진다.

 요리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과 시그니처를 음식에 담고 이를 지켜내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순수예술음악을 하는 나는 누구인가. 청중의 외면을 두려워하기보다, 대중보다 한 발 앞서 그들을 설득하고 이끌 수 있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 공연을 통해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내 음악적 지향점을 온전히 구현하는 작곡가이고 싶다. 안성재 쉐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외롭지 않다. 이러한 생각은 나 혼자만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미술, 영화, 무용, 문학 등 순수예술과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누구나 갖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순수’가 들어가면 원래 그런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만들고 연구하는 사람은 탐구와 고찰로서의 노력을, 그것을 지켜보고 즐기는 사람들은 이해하고 나름의 매력을 찾으려는 그 위치에서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순수예술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원래 순수예술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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