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육신문

‘한국의 고전 및 현대음악 축제’ 총 26회 순회공연

‘한국의 고전 및 현대음악 축제’가 한독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열릴 ‘2005 한국의 해’ 행사를 앞두고 개최된다. 독일 6개 도시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는 기라성 같은 한국의 전통 및 현대음악인 40여명이 참가하는데 이들 가운데 현대음악작품으로 초대된 작곡가 이만방 교수를 만나봤다.
해마다 계속되는 한국의 날 행사에는 지난 해 국악을 전공하는 그의 큰딸 아미(서울대 국악대학원)가 국악창법과 서양성악발성을 접목한 음악연주로 크게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현대음악기법에 한국음악의 전통을 조화롭게 구현하는 작품세계로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선두에 있는 그는 연세대 음대와 동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독일유학 후, 숙명여대 음대에 초빙되어 현재 작곡과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작곡가협회이사장을 맡고 있다.

대학진학이 전도유망한 직업을 갖기 위한 하나의 코스가 되어버린 작금의 교육사회풍토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는 그는 물질적으로 부족하고 어려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학창시절이 지금의 학생들보다 훨씬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문을 연다.
이만방 교수는 연세대 음대 입학 때까지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산골소년이었다. 오로지 음악이 좋아서, 음악이 하고 싶어서 무작정 음악가의 길을 선택했다는 그의 음악인생여정은 한편의 드라마 같다.

그는 태어나서 대학입학으로 서울유학을 가기 전까지 1,200미터 높이의 산봉우리가 12개나 에워싼 경남 거창읍 오지마을에서 자랐다. 학교에서조차 음악교육을 받아보기 어렵던 5,60년대 그 산골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등하교 길에 학교 앞 책방에서 흘러나오던 클래식이 고작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며 듣던 그 음악들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맴돌 정도라고. 고교시절 우연히 고향 강가 근처 병원에서 흘러나오던 신기한 악기소리를 듣고 그 시간이면 날마다 몰래 엿듣던 추억, 나중에야 그 악기가 바이올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접했던 이 음악들은 자신의 귀한 음악의 텃밭이 되게 했다.

산골소년인 그에게는 남다른 또 하나의 축복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창시절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가 좋다는 이유하나로 해마다 고향 ‘아림예술제’노래대회에 나가 상을 받게 하고 근처 도시의 경연대회를 석권하게 이끌어준 초등학교 선생님, 일본 동경에서 잠시 귀국해 폭넓은 음악을 접하게 해준 바이올리니스트 이석화 선생,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유병무 선생(현 한국남성합창단 지휘자), 그에게 기타나 다른 악기들을 다루는 식견을 갖게 해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큰형님, 음악기초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오늘날 교육계의 큰 별이 된 이상근 은사, 고등학교 때 작은 모티브하나로 작곡가의 꿈을 갖게 해준 음악선생님, 그 중에서도 다른 지방으로 전근가고도 방학동안 내려와 그와 함께 강가에서 콘코네 50번에서 15번까지 독학하도록 도와주신 김용성 은사, 그가 기억해내는 모든 사람이 다 그의 스승이었다. 그런 복된 만남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고 무척이나 감회 깊은 마음으로 감사해했다.

부산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슈베르트 연가곡전집을 사기위해 차비까지 털어 구입하고 걸어오며 흐르는 멜로디에 흥분해 하던 일, 풍금만 접하던 그가 책을 통해 피아노에 대해 연구하고 마분지로 88건반 피아노를 만들어 연습하던 것, 대학생이 되어서는 버스표를 내면 현대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었던 음악다방에서 살다시피 한 일, 방학이면 음악을 더 많이 듣기 위해 클래식다방에서 DJ 아르바이트를 하고 맹인학생을 돕기 위해 도서실에서 악보를 빌려 일일이 손으로 사보를 하며 시연해주던 일 등등 끝없는 그의 이야기는 재미를 위해 일부러 설정한 드라마 속의 에피소드 같았다.

누구보다도 복을 많이 받은 산골소년으로서 스승들의 모습 그대로 제자들을 지도하는 게 교육자로서의 그의 소박한 꿈이다. 또한 상업성에 물들고 무작정 유행을 따르는 음악세계를 보며 작곡가로서 그는 “기성세대 음악가들이 음악인의 삶의 궤적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아 음악인들이 목적의식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조지훈의 ‘지조론’을 들어 말한다. 적어도 창작하는 예술가라면 자기예술에 대한 세계관이 분명한 삶을 살면서 그것이 자신의 창작 작품에 보여져야한다. 요즘의 음악엔 패션은 있어도 메시지가 없는데,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때문에 어쩌면 당대의 사상가들보다 더 고난을 받을지도 모를 분명한 자기세계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변화한다. 음악은 삶의 궤적이다. 동시대인의 궤적. 공부라는 것은 과거의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것을 참고삼아 역사적 안목에서 재해석해 낼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무조건 안 된다고 고집만 피지 말고 그것을 긍정적 안목으로 인정하고 수용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나아가야하는 자세 또한 필요한 것이 예술가이다.”

그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 질문이 필요 없었다. 여름방학을 맞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다했단다. 음악을 무조건 많이 듣는 것, 위대한 작곡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작품들을 직접 손으로 사보하는 것, 음악이 너무 좋아서 목숨이라도 걸고 열정적으로 음악공부를 하는 것 등등은 너무나 풍요로운 물질세계 속에서 사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고루한 옛이야기 같겠지만 진리는 항상 너무 단순하고 쉬워서 간과하게 되기 마련이다.

끝으로 지금도 가슴 떨리게 감동을 주었던 김용성 스승과의 에피소드 하나!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찾아 만난 그의 스승은 이제 음악전공자의 길을 가는 제자에게 음악교육대출신인 자신의 음악적인 부족함을 털어놓으며 달달 외워도 이해가 안가는 대위법 책을 펴들고 다음엔 자신에게 대위법을 꼭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더란다. 어쩌면 제자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을 스승의 그런 모습을 보며 가슴이 묘하게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단다. 선생이라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진정한 진리를 가르쳐주신 그분을 지금도 사모하며 자신도 기꺼이 고향 후배를 가르치고 제자에게 스승의 모습처럼 인식되길 원한다.

그의 음악인으로서의 삶의 궤적은 곧 음악전공학생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것 같다. 자신의 전공에 대한 열정과 목숨 걸고 뛰어드는 배움에의 갈망,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소중히 하는 자신감 이런 것들은 오늘의 사제 모두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애연 전문기자/musicnews@music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