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육신문

한국 음악계의 대모, 작곡가 이영자
이화여대 교수 재직 중 81년 여성작곡가들 뜻모아 ‘한국여성작곡가회’ 설립
6월 27일 오후 7시반 제자 나효신과 함께 작품발표회

새벽 두 시, 이른 잠은 떨치고 책상 앞에 앉는 작곡가 이영자는 매일 하루 서너 시간씩 작곡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70년을 넘게 음악과 함께 해오면서 몸에 밴 습관이다. 여전히 그의 삶의 중심에는 작곡에 대한 열정과 음악이 옹골차게 들어 있다.
작곡가 이영자는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국립음악원, 뉴욕 맨하탄 음대, 벨기에 브뤼셀 왕립 음악원에서 작곡을 전공, 프랑스 파리 IV대학(소르본)대학에서 음악학 D.E.A.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20여 년간 이화여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양성에 힘쓰는 한편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86년 ‘제8회 대한민국 작곡상’, 94년 ‘올해의 음악가상’, 96년 ‘제15회 대한미국작곡상 최우수상’, 2000년 ‘제14회 한국예총 예술문화상’ 등 굵직굵직한 국내 음악상을 휩쓸었고 동아음악콩쿠르, 한국일보 안익태 작곡상, 한민족창작음악축전 작곡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70년 일생동안 순수 예술에의 열정으로 살아왔으니 그의 경력이 책 한 권이 된다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작곡활동과 교육에 임하면서 가장 주력을 기울인 부분은 작곡가들의 힘을 모으는 것과 제자들을 더 깊은 음악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었다. 특히 남성 중심 사회에서 도태되기 쉬운 보석같은 여성작곡가들의 힘을 모아 81년 한국여성작곡가회를 설립, 지금까지도 명예회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초기에 이영자 교수를 비롯, 홍성희, 오숙자, 서경선, 허방자, 이찬해의 여성작곡가 6인이 중심이 됐던 한국여성작곡가협회는 매년 2회의 작품발표회, 세미나 및 워크샵을 개최, 현재 120여 명의 여성작곡가 정회원들이 이끌어가는 여성작곡가들의 큰 기둥으로 성장하였다.
“제자이자 뛰어난 여성작곡가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한국여성작곡가협회’를 조직했습니다. 음악계에서 많은 부분 남성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여성들의 감각과 능력은 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또 1992년 결성한 작곡가 동인그룹 델로스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그의 제자들을 주축으로 현재 14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서로의 작품세계를 존중하며 매년 1회 이상 작품발표회를 갖고 있다. 지난 5월에도 창작공연 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델로스 작품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차세대 작곡가들의 힘을 한데 모으고 그들의 앞길을 터주기 위해 노력하는 음악계의 대모 작곡가 이영자의 이러한 노력은 오는 6월 27일 오후 7시반 2005 모차르트홀 초청공연으로 열리는 ‘이영자 & 나효신 음악의 밤’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그의 제자 나효신이 스승 이영자 선생에게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하는 자리이다.

“나효신은 나의 제자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중 한 사람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작품 활동을 펼치며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제자의 모습을 보면 뿌듯하지요. 제자와 함께 연주 무대를 가질 수 있어 더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제자 나효신의 제안으로 갖는 이번 연주에서 그는 ‘피아노를 위한 8개의 변주곡-엄마야 누나야’, 세 대의 거문고를 위한 ‘희수(喜壽)에부르는 노래’, 피아노와 소프라노를 위한 ‘노래있기에(김남조 시, 2005 세계초연)’을 선보인다. 그의 음악에는 항상 한국적인 요소, 전통적인 요소가 스며있다.

“내 뱃속의 음악은 우리 음악입니다. 어린 시절 그 소리들이 내 주변에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다 깨달은 거죠. 국악이 새롭게 빛을 보고 있는 요즘 우리 소리 안에 더 좋은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은 특정인들만의 임무는 아닐 것입니다. 모든 음악가들이 노력해야할 부분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도 국악을 활용한 작품활동을 적극 권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여성의 몸으로 과감히 유학길에 올라 작곡을 공부하고 75세가 된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며 제자들과 함께 변함없는 음악에의 꿈을 일궈가고 있는 작곡가 이영자. 그의 모습은 여전히 호방하고, 여전히 순수하다.

“나는 삼순(三純)입니다. 순진(純眞), 순수(純粹), 순정(純情)으로 음악하지요. 음악은 영혼의 표출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순정을 다하지 않으면 순수예술을 지향할 수 없겠지요. 최근 순수예술이 사양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간 후에 새로운 싹이 돋아날 것을 기대하면서 보다 높고 긴 안목으로 음악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후학들도 시대를 넘어서는 음악에로 전진하길 바랍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묀다 했던가? 오랜 세월 깊이 뿌리박고 든든히 지켜주는 작곡가 이영자가 있어 우리 음악계는 중심을 잃지 않고 더 높고 먼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혜진 기자/musicnews@musiced.k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