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주자 및 예술인들과의 만남을 들려드립니다.| 제목 | 중앙대학교 박범훈 신임총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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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7.03.31 | 작성자 | 음악교육신문사 |
피리부는 소년에서 대학 총장으로...
중앙대학교 박범훈 신임총장
국내 최초 국악인 출신 종합대학 총장
대학행정을 ‘예술적’으로 이끌어 볼 터
오는 2월 3일 총장 취임 예정
다사다난했던 지난해가 다갈 무렵, 각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식이 하나있었다. 중학생 때 남사당패의 풍물가락에 반해 예인(藝人)의 길을 택한 국악인이 40년 뒤 종합대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대학마다 학교발전기금 모금에 유리한 계열의 출신 교수들이 총장에 당선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국악인의 총장 선출은 국내최초로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모든 소식통들이 입을 모아 대서특필했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창작음악학과 박범훈 교수이다. 그는 지난 해 12월3일 직선제로 치러진 중앙대학교 총장후보자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12월24일 제12대 총장으로 선임되어 오는 2월3일 정식 취임을 앞두고 있다.
국악과 작곡이 전공인 박범훈 신임총장은 당선이 확정된 후, 교육자로서 총장의 자리에 오른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예술가로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중앙대라는 또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데 열정을 쏟아 부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고향인 경기 양평군의 중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며 음악을 처음 접했던 그는 어느 날 마을에 들어온 남사당패의 매력에 이끌려 1964년 한국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고)에 입학, 인간문화재 지영희 선생으로부터 피리를 배웠다.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무사시노음대에서 석사학위와 동국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순히 음악인으로서 보면 그의 총장선출이 이례적이라 하겠으나 그에 대해 조금만 깊이 알아보면 결코 오늘의 그가 거저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 음악 작곡과 지휘,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쓰인 ‘해맞이’를 작곡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식 음악 총감독 등, 국내 주요 행사의 음악작업을 도맡다시피 했다. 1993년에는 국내 최초의 민간 국악 관현악단인 중앙국악관현악단과 한·중·일의 민족 음악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창단했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또 작곡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쳐 마당놀이 ‘허생전’과 ‘이춘풍전’ 외에 무용곡과 관현악곡·독주곡·오페라 등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만 해도 수백 편에 이른다. ‘피리산조 연구’, ‘작·편곡을 위한 국악기 연구’, ‘한국불교음악연구’ 등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 행정가로서의 박 신임총장의 이력도 상당하여 1984년 중앙대 음대 전임강사가 된 뒤 중앙대 국악대학장, 법인사무처장, 제2캠퍼스 부총장직 등을 역임했고, 최근에는 서울 흑석동에 개원한 중앙대병원 건설에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또 서울국악 예술중학교를 설립하고 국악학원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국악교육대학원 설립, 최초의 국악유치원 설립, 최초의 민간 관현악단 창단 등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그에게 또 하나 최초의 국악인 총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
음악가가 대학 행정이나 경영을 잘 하겠느냐는 일부 우려에 대해 “작곡은 새로움을 찾는 일이고 지휘는 다양한 개성을 화합시키는 작업인 만큼 총장직이 내 ‘본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제 예술가도 종합행정가로서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우려를 일축시키는 그는 또 총장에 선임된 이상, 임기 중에는 악보 대신 서류뭉치를 보며 대학행정을 ‘예술적’으로 이끌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척박한 예술계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이 어려운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작곡가의 창조정신과 지휘자의 화합정신을 버무려 중앙대를 세계의 중앙무대로 진출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인생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의 연(緣)’이라고 한다. 사람의 만남과 인연은 만남의 인연인지 인연에 의한 만남인지 모르지만 그런 만남과 인연이 그의 음악과 삶을 만들어왔다고. 인연이란 남과 나의 맺음으로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맺음으로 인해 함께 살아가는데, 이런 맺음의 종자를 잘 키우도록 노력해서 내가 상대를 존중하고 그에게 맞추려고 노력하여 진심으로 사귀고 그 후에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온 그였기에 오늘의 이런 자리가 주어진 것이 아닐까.
국악을 시작한 뒤 우리 것을 찾겠다는데, 우리 소리를 이어가겠다는데 왜 국악이라고 얕보고 천대하는지 한이 맺히고 분통이 터져서 국악에 관한 일이라면 피리연주, 작곡, 지휘, 마당놀이, 오페라, 음악무용극, 사물놀이곡 등 음악적인 것은 물론이고 학교 행정도 닥치는 대로 해냈다는 그는 보란 듯이 우리소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국악가도 훌륭한 행정가가 될 수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박 신임총장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힘들었지만 축복이었고 우리나라의 국악현실이 너무 척박한 황무지여서 개척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건 그것이 최초의 사건이 되었기에 그것도 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가 일궈낸 최초의 국악인 총장의 연이 중앙대에서 세계로 뻗어나가 어디서 무엇을 최초로 어떤 맺음으로 나타날지 고대하게 하는 2005년이다.
(김애연 전문기자/musicnews@music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