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육신문

고향의 바람이 다시 불어오고 새로운 항해의 돛이 펼쳐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설렘과 기대감을 안겨준다. 첫눈, 첫인사, 그리고 첫사랑처럼, 단 한 번의 시작을 의미하는 ‘첫’이라는 단어가 주는 특별한 감정은 새로운 여정에 용기를 불어넣는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이러한 설렘과 다짐 속에서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는 소프라노 김승현이 있다. 그녀에게 ‘귀국 독창회’는 음악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첫걸음이다. 김승현은 두 번의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성장과 앞으로의 여정을 담은 목소리로 관객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귀국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번 독창회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새로운 출발에 담긴 그녀의 다짐과 열정을 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한다.

귀국(歸國), 관객과 마주할 날을 기대하며

“우선, 음악교육신문사 지면을 통해 독자분들께 먼저 인사를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웃음). 12년 동안 학업에 매진하느라 가족들과 떨어져 있던 기간이 길어, 작년 중순 귀국한 뒤 현재는 가족과 함께 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는 요즘의 일상이 저는 참 행복합니다. 또한, ‘귀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서울과 부산에서 독창회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제 고향인 부산과 또 제가 학부 시절을 보낸 서울, 두 도시 모두에 많은 감사한 분들이 계시는지라 각각 한 번씩의 독창회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주회는 '귀국 독창회'인 만큼 제가 지금까지 타지에서 공부해온 것들을 모두 보여드리는 자리가 될 예정이고 또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성악가로서의 저를 알리는 무대이기도 하기에 그만큼 특별하게 느껴지고 설레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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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김승현이 국내 관객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꽃봉오리를 피워낼 봄날의 노랫소리

본 공연은 국내 관객들에게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성악가로서 첫인사를 올리는 ‘귀국 독창회’이기에 더욱 감회가 남다르다고 전한 소프라노 김승현. 그녀가 이번 귀국 독창회의 작품들을 선정하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요소들은 무엇이었을까?

“‘귀국 독창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번 공연은 그동안 유학하며 갈고닦아온 학문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무대이기에, 프로그램 선정에 있어 많은 고민이 들었고 다양한 시대와 언어의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다채로운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레퍼토리를 선정하는데 제일 중요했던 것은 제가 유학 시절에 가장 즐겁게 공부하고 또 많은 음악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곡들로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귀국 독창회에서는 한 작곡가당 몇 곡씩으로 많이들 레퍼토리를 선정하시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제 음악 공부에 이정표가 되는 곡들이 여러 작곡가에게 흩어져 있었어요.

많은 고민 끝에 1부 첫 번째 순서로 들려드릴 가곡 레퍼토리를 ‘자연의 노래’라는 주제 아래 열 곡, 열 명의 각기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묶어냈습니다. 1부 두 번째 순서로는 소프라노 오라토리오 아리아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한 곡을 들려드릴 예정이며 이어지는 2부 무대에서는 각기 다른 시대와 언어의 오페라 아리아 네 곡을 들려드릴 계획입니다. 오라토리오 아리아에도 정말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아 들려드리고 싶은 곡이 많았고 원래는 두 곡의 아리아를 올리고자 했지만 교수님께서 너무 무리가 되지 않겠냐고 염려하셔서 한 곡으로 줄이게 되었어요.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 같은 경우에도 보통 독창회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는 같은 보이스 파트에 속하는 아리아들로만 구성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오랜 기간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여러 선생님들께 제 목소리는 리릭이라고도 콜로라투라라고도 정확히 말할 수 없다는 평을 들어왔기에, 파트에 개의치 않고 제가 사랑하고 또 다채로운 무대를 선사할 수 있는 곡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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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승현은 그녀의 폭넓은 음악적 소화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이번 프로그램 레퍼토리 중 가장 기대가 되는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저는 특히 가곡을 좋아하는데요. 가곡은 시와 성악 선율, 피아노 반주 이 세 가지의 조화에서 끝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릴 적 독일어로 된 가곡을 한 자 한 자 번역하며 그 문장의 온전한 뜻을 이해했을 때 물밀듯 밀려오던 아름다움에 가슴이 저릿해서 스스로를 꼭 끌어안곤 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알고 듣는 대가들의 음반들은 저를 여러 풍경과 감정으로 이끌어 주었고요. 많은 밤을 그렇게 지새웠고 이 아름다움을 꼭 사람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죠.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곡을 한 곡 꼽아보자면 아마 알마 말러(Alma Mahler)의 가곡 <In meines Vaters Garten>이 아닐까 싶습니다. 알마 말러는 국내에서는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그만큼 유명하진 않습니다. 저도 유학지에서 처음 그녀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그 뚜렷한 개성과 독창적인 화성 진행에 단번에 매료되어버려 한동안 그녀의 작품만 몰입해서 연습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곡들, 특히 제가 이번에 부르게 될 <In meines Vaters Garten>을 보면 예측하기 힘든 화성 진행, 꿈과 현실을 오가는 가사, 피아노 반주가 풀어내는 풍부한 스토리텔링 등으로 구스타프 말러를 비롯한 당대 오스트리아 빈의 여러 예술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알마 말러라는 사람이 얼마나 다채롭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지요. 테크닉적으로도, 해석적으로도 쉽지 않은 난이도의 곡이지만 무대에 꼭 올리고 싶은 곡이었습니다.

이번 독창회가 '귀국 독창회'이기에 가장 특별한 곡을 꼽으라 하면 이 곡이겠지만, 사실 모든 곡을 사랑합니다. 곡 이야기를 하자면 끊임없이 할 수 있어요. 첫 곡으로 시작되는 모차르트(W. A. Mozart)의 <Das Veilchen>만 보더라도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로 시작되기에 그저 밝기만 한 곡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 내가 밟혀 죽어도 사랑하는 그녀의 발아래에 죽기에 나는 행복하구나!”라고 외치는 제비꽃의 깊은 사랑을 볼 수 있는 심오한 곡이죠,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가 쓴 시에 붙여진 곡입니다. 가곡 묶음의 마지막 곡인 현대 작곡가 아우구스타 리드 토마스(Augusta Read Thomas)의 <Twilight Butterfly>라는 곡도 아주 흥미로운데요, 제목이 ‘황혼의 나비’인 만큼 끝없이 펼쳐지는 황혼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곡 시작부터 끝까지 피아노의 서스테인 페달을 한 번도 떼지 않고 밟은 채 연주된답니다. 종소리, 또는 황혼을 뜻하는 베이스 라인의 피아노, 그 풍경 속을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을 한 높은 음역대의 또 다른 피아노 라인, 그리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화자이자 중간 선율을 맡은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서로 주고받으며 곡을 이어나가는 것을 들으며 눈앞에 황혼의 풍경을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오페라 아리아로도 할 이야기가 많은데요, 제가 유학한 학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Mozarteum이라는 학교였습니다. 이곳은 국립음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식 모차르트 연구기관이기도 합니다. 마침 제가 공부하던 당시에 학교에서 정기연주회로 모차르트의 대표 오페라인 <마술피리 >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공주 역할인 ‘파미나’로 오디션을 보았고 통과해서 그 역을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지휘자 선생님께서 꼭 제가 ‘밤의 여왕’ 역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추천하셔서 급하게 역을 바꾸게 되었죠. 워낙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동시에 강하고 선명한 캐릭터를 보여줘야 하는 역이라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밤의 여왕과 첫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음보다도 끝없이 이어지는 멜리스마 부분이 테크닉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는데요,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도 3년을 더 그 곡을 붙들고 연습하니 이제는 멜리스마 부분도 큰 부담 없이 부를 수 있게 되더라고요. ‘밤의 여왕’은 그래서 제 유학 생활의 고생과 열정을 함축해놓은 애증의 대상이고, 물론 제 독창회 2부 프로그램의 첫 곡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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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콩쿠르 한스 가버 벨베데레 성악콩쿠르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을 뿐 아니라 프랑스 음악콩쿠르 2위 수상을 비롯해 국내 다수 성악콩쿠르에서 입상한 그녀는 자신이 지켜온 음악적 신념이 그저 노래를 하며 듣는 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노래로 구현해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죠. 누가 들어도 좋아하고 만족하며 또 위안받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문도 생겼고 그 이전에 ‘이미 불완전한 인간인 내가 그것에 다다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그저 제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께서 조금의 ‘기쁨’과 ‘즐거움’이라도 느껴주신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어요(웃음). 음악이란 듣는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여러 차원으로까지 청자를 데려가 준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저로 인해 그런 경험을 한다면 성악가로서 성공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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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김승현이 존재하도록 한 데에는 오랜 시간 동안 훌륭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중 그녀의 음악성을 크게 폭 넓혀 주었던 특별한 만남이 눈에 띈다.

“한국에서의 제 은사님은 부산예고 재학 당시에는 김종화 선생님, 그리고 서울대 재학 중에는 성악과 박미혜 교수님이 십니다. 항상 우러러보았던 분들이었지만 제가 유학을 나와 공부해 보니 은사님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어요.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삶의 배경 자체가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과는 다른 한국의 선생님들께서 지금보다도 클래식 음악의 접근이 더 힘들고 유학은 더더욱 고됐던 시절에 외국으로 나가셔서 그 힘든 공부를 해서 돌아오시고 배운 것을 온전히 당신 것으로 만드셔서 또 제자에게 나눠주셨다는 것은 실로 감탄이 나오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종화, 박미혜 교수님께서는 제 발성의 기본기를 탄탄히 잡아주시고 한국인이 외국의 것인 클래식 음악을 접할 때 어떤 마음가짐과 기술로 다가가고 소화시켜야 하는지 알려주신 감사한 분들이십니다. 이분들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저는 성악가로서의 출발뿐만 아니라 특히나 유학 생활을 할 때 더 많은 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유학을 나와서는 또 많은 좋은 선생님들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이신 Barbara Bonney 선생님과 독일 궁정가수이신 Elisabeth Wilke 선생님뿐만 아니라 지휘자이신 Kai Röhrig, 리트 교수이시자 피아니스트이신 Pauliina Tukiainen, 코레피티토어이신 Julia Pujol 등 정말 많은 분들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주셨어요. 클래식 본고장에서의 공부는 저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제가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의 '이방인'으로서 가졌던 많은 고민을 해소해 주셨고, 단순히 테크닉을 넘어선 음악에서의 여유, 표현의 자유, 즐거움을 일깨워 주신 것과 더불어, 악보 뒤에 있는 많은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현지인들에게는 당연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레슨이 많을 때는 한 주에 8번씩 있었지만 그저 즐거웠어요. 마치 아이로 돌아가 꿈속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죠. 공부하는 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선생님들과 어쩜 이럴 수 있을까 하며 방방 뛰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공부는 제 음악적 자산을 더욱 풍성하게 가꿔주었고 한 명의 연주자로서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을 크게 발전시켜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무대는 ‘실패’를 경험으로 ‘더 나은 실패’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공간!

연주자에게 ‘무대’란 어떠한 의미일까. 이 질문에 김승현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음악은 혼자 할 때보다 타인과 나눌 때 그 의미가 더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대라는 공간이 꼭 필요하지요. 무대라는 공간은 음악을 선사하는 가장 즐겁고 기쁜 공간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아마 대부분일 것입니다. 좋은 연주에 대한 부담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음악에 있어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에게 무대는 실패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제가 그려온 이상향의 연주를 펼칠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실패가 성공은 아닐지언정 아름다울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번 더 나은 실패, 조금 더 즐겁고 더 아름다운 실패를 무대 위에서 선사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킬 계획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도전들과 함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다음과 같은 약속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현재 저는 부산예술중·고등학교에 출강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들을 보면 얼마나 기특하고 한 명 한 명이 예쁜지요. 가르치는 게 천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생들과 서로 좋은 에너지를 많이 주고받으며 즐겁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국 독창회 직후에는 부산시립예술단 주최 오페라 마술피리에 밤의 여왕 역으로, 그리고 여름에는 부산 을숙도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헨리 퍼셀의 오페라 요정의 여왕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원래 저는 계획하는 걸 좋아했어요. 몇 년도에는 무얼 하고 몇 살까지는 뭘 해야지,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생각보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고요. 언젠가부터 저의 목표는 '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게 주어진 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해내 자'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주어질 많은 일들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성악가로서 즐거운 무대를 교육자로서 도움 되는 가르침을 선사하고 한 사람으로서 내실을 갖추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꾸준히 가꾸어나가겠습니다.”

(안나영 기자/musicnews@musiced.co.kr)

｜소프라노 김승현｜

• 부산예고, 서울대 졸업,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오페라 석사, 최고연주자과정 최고점 졸업, 동 대학원 가곡 및 오라토리오 석사 조기졸업

• 오페라 <마술피리>, <차: 영혼의 거울>, <라 크리티카>, <돈 조반니> 출연

• 프랑스 음악콩쿠르 2위 수상 및 국내 다수 성악 콩쿠르 입상

• 현) 부산예중·고 출강, 전문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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