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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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 홍난파 작곡, 김형준 작시 <봉숭아>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홍난파 작곡의 <봉숭아>를 시작으로 백 년을 꽃 피워온 한국가곡을 통해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그림자를 돌이켜 보며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래하려 한다. 이에 10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우리 곁을 지켜온 ‘한국가곡’ 속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민족의 얼을 연구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자 직접 펜을 든 (사)CMAK음악인협회 정혜경 이사장과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 도서출판 성득 유미경 이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담다

[예술가곡 반주집], [한국신작예술가곡 기악연주집] 등 현재까지 41장의 앨범을 출반하며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한 그녀가 선택한 다음 발자국은 바로 100여 년이란 긴 시간을 담은 우리가곡의 역사를 집필하는 것이었다.

“한국가곡을 연주할 때면, 왠지 모를 가슴 아린 ‘한(恨)’이 느껴지곤 합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2박자 댄스리듬을 접목한 일본의 ‘폭스트로트(fox-trot)’를 전파하며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정신여중 음악교사였던 김형준 선생님께서 일본의 억압에 짓밟힌 겨레의 슬픔과 고뇌를 그린 시에 홍난파 선생님께서 자신의 바이올린곡 <애수>의 가락을 얹어 최초의 우리가곡 <봉숭아>를 완성하시며 ‘한국가곡’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후 예술성 짙은 서정적인 곡들이 대거 작곡되고, 대중매체의 발달로 음반발매와 악보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부흥기를 맞이했지만, 오늘날 K-Pop을 비롯한 장르의 다양성, 글로벌 시대의 영향으로 우리가곡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가곡의 진면목를 되살리고자, 또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역사와 민족의 얼을 알리고자 ‘도서출판 성득’의 유미경 이사와 함께 사명감을 가지고 본 저서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정혜경 이사장)

우리 민족의 삶과숨결을 담은 ‘한국의 소리’

1991년 독일에서 반주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정혜경이 피아니스트가 아닌 전문반주자로 첫발을 디디며 ‘반주외길’ 을 시작한 지 어언 30년. 오랜 시간 반주자로서 수많은 작품을 연주했지만, 한국가곡을 연주할 때면 늘 뭔가 미진하고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한국가곡 안에는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감정과 역사적 배경이 담겨있어 단순히 ‘테크닉’적으로만 접근하기엔 그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역시 30대 초반에 한국가곡을 연주할 때면, 성에 차지 않는 듯한 부족함을 느껴 ‘조금 더 살아보고, 연륜이 될 때 다시 연주하자’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때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친구인 도서출판 성득의 유미경 이사의 권유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을 때는 이러한 기다림의 세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용기를 내야 했는지 모릅니다(웃음). 그렇기에 본 저서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 속에 담긴 깊고 짙은 한국가곡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써 내려간 저의 오랜 정성이며 이 책을 통해 우리 가곡의 맥이 더욱 살아나는 데 작은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정혜경 이사장)

“이전부터 클래식 공연을 많이 다니곤 했는데, 이 친구 (정혜경 이사장)의 공연을 볼 때면, 타 공연과 달리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한국가곡이 ‘Korean Art Song’이라 번역되듯,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악상과 선율, 셈여림 등의 예술적인 요소들에 이 친구의 해석이 더해져 재탄생하는 무대에서는 한국가곡을 향한 ‘피아니스트 정혜경’의 진정성을 넘어 ‘사명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특히, 가곡이란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작품이기에 작시 및 작곡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가사에 숨은 의미를 음악과 함께 음미할 때면 우리가 흔히 아는 가요와는 달리 더욱더 깊은 감동이 전해지기에 한국가곡에 있어서는 더욱 우리 민족의 역사를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젊은 연령대의 친구들에게 한국가곡은 그저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없는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K-Pop과 뮤지컬 등의 발전으로 한국가곡은 젊은 친구들이 접할 환경도 되지 못할뿐더러, 그들에게 노출되지도 않기에 익숙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높은 연령대의 이들에게만 국한되어 대중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가곡의 수명은 끝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걱정에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가곡의 대중화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혜경 이사장님과 함께 대중적인 작품에서부터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까지 골고루 재조명하여 이 안에 담긴 역사적 사실과 시대적 배경, 숨겨진 이야기 등을 독자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유미경 이사)

30년의 노하우를 담은 지상레슨

본 저서에는 최초의 한국가곡 홍난파 <봉숭아>를 시작으로 작곡가 박태준, 김순애, 김동진, 김규환, 장일남, 채동선, 윤용하, 이영조, 최영섭, 이수인 등의 작품 34곡이 수록되어 독자들에게 소개될 예정이다.

“본 저서는 각 작품의 작곡가와 작사가에 대한 소개부터 작곡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각 작품마다 반주 유형과 반주법 등을 설명한 지상 레슨 악보와 음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예술가곡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가곡의 대가들인 슈베르트, 슈만 등의 가곡연주법과 반주법에 대해 공부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한국가곡 반주를 대하니 우리의 ‘얼’이 담긴 한국가곡이라고는 해도 서양 음악기법으로 작곡된 가곡이기에 그 분위기를 알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한국 작곡가협회]에 입단하여 10여 년간 활동하는 등 한국가곡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은 한국가곡을 이해하기 위한 발걸음이었고, 그 당시 작곡가분들의 곡에는 반주부가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반주자로서의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지상 레슨책에서는 그간의 반주연주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생각을 가지고 서양음악을 기반으로 작곡된 한국가곡 반주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섬세하게 설명해 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은 악보와 더불어 CD로 들으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정혜경 이사장)

예를 들어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 <봉숭아>를 살펴보면 난파 홍영후(홍난파)와 작사가 김형준에 대한 소개와 작품 탄생 비화, 그리고 이 작품을 대중화시킨 소프라노 김천애가 옥고를 겪고 전한 <봉숭아> 이야기, 그리고 작품의 반주 유형과 반주법이 악보와 CD를 통해 상세히 소개되고 있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었다.

“‘반주’란 키워드에 대해 이 친구를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연주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놀랄 때가 많은데요. 정말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작품에 대한 배경과 작곡가 및 작사가의 생애, 가사에 담긴 의미를 연구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연구한 내용을 잘 해석하고 있는지 또 의심하며 합니다. 익히 아는 작품일지라도요(웃음). 모두가 알고 있듯, 반주는 돋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남을 돋보이게 해주는 자리’입니다. 마치 리더와 구성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 성장을 도모하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같죠. 그렇기에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친구의 모습에서 진정한 ‘리더쉽’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곤 합니다. 앞서서 이끌어가는 리더가 아닌, 뒤에서 남을 섬기며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리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젊은 세대들과 함께 나누어야 할 덕목이자 삶을 살아가는 자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 저서에는 지난 30년간 전문반주자로서 눈부신 활약을 이어온 정혜경 반주자의 발자취와 노하우를 담았는데요. 이를 통해 ‘반주’의 진정한 가치를 되돌아보며 한국가곡의 숨은 이야기들을 발견해보시기 바랍니다.”(유미경 이사)

한국가곡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공자는 백성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 사회의 수준을 안다고 했지요. 아름다운 노래를 많이 부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사람이 있나요? 그건 진짜 행복이 아녜요. 돈 부자보다는 ‘마음의 부자’가 되자는 겁니다.”

-작곡가 이수인

이수인의 <별빛이 흐르는 밤에>. 이 작품은 두 사람이 가장 아끼는 한국가곡이라고 한다. ‘동양의 슈베르트’라 불리며 서정적이고도 감수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의 가곡에는 ‘순수함’이 담겨있어 많은 이들에게 꿈과 위로, 그리고 어린 날의 동심을 불러일으키며 현재까지 애창되고 있다. 이렇듯, 1900년대 이후 암울했던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시인과 작곡가의 용기로 빚어낸 한국가곡이 국민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었던 만큼,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삭막해진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의 가곡은 다시금 위로의 손을 뻗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많은 혼란과 다툼으로 인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토록 힘들었던 시절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서로를 배려했던 마음들은 이제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곡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뿌리 깊은 느티나무처럼 대중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명맥을 이어갈 것입니다. 본 저서가 한국가곡을 부흥시킬 수 있는 음악계의 ‘마중물’, 또는 ‘밀알’이 되어 조금이나마 대중들에게 다가간다면 이 책을 쓴 저자로서 큰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2024년 출간될 [한국예술가곡 -가곡의 시간 2]에서는 아직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곡들과 현재 꾸준히 창작되고 있는 의미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한국가곡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곡의 역사와 의미를 깨우쳐 주신 이 시대의 대작곡가 운산 최영섭 선생님과 한국가곡에 관해서, 그 반주 법에 관해서 많은 가르침을 주신 테너 심송학 교수님, 나의 연주와 음악 생활에 30년 가까이 오랜 동행자로 함께해 주신 테너 박범철 교수님,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씀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된 김점덕 교수님의 [한국가곡사]책을 기꺼이 내어주신 임우상 작곡가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정혜경 이사장, 유미경 이사)

한편, 이번 출간 소식 이후 11월 27일(일) 한국가곡 100주년 기념 <제24회 Collaborative Pianist- 정혜경 반주 연주회- ‘너를 위하여’> 개최 소식을 알린 그녀. 본 공연은 2022년 한국가곡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주회이자, 신간 [가곡의 시간]을 기념하기 위한 출판 연주회로 허방자 <너를 위하여>, 김순남 <자장가>, 홍신주 <청포도>, 채동선 <향수> 등 불려지지 못했던 주옥같은 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한국가곡의 진면모를 보고 싶으신 분은 본 공연을 추천하는 바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용기로, 한국가곡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본 (사)CMAK음악인 협회 정혜경 이사장과 도서출판 성득 유미경 이사의 열정과 노고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본다.

(서지나 기자/musicnews@musiced.co.kr)

| 정혜경 |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 독일 뒤셀도르프 슈만 국립음대 대학원 졸업(피아노)

• 독일 부퍼탈 국립음대 대학원 반주과 졸업

• 6인 비평가 그룹 ‘오늘의 음악가 상 수상’ (예술가곡 반주와 음반제작에 기여한 공로)

• 2016 올해의 이화인 선정

• 1997-2022 예술가곡 반주 음반 1~41집 출반

• 2001-2011 음악저널에 예술가곡 지상렛슨 및 원고 연재

• 2011 독일 호스피스 단체 ‘동행’ 초청 베를린 필하모닉 쳄버홀 연주

• 2019 아르헨티나 아우아리바이 문화원 초청 ‘동쪽에서 온 위로’ 연주

•2022 대한민국 오페라대상 공로상

• 현) 대구반주연구회 회장, (사)CMAK 음악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