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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1 13:22
<시사평론>천재교육
 글쓴이 : 음악교육신문사
조회 : 317  

천재교육

들은 것은 들어온 것이다. 귀를 통해 몸속으로 들 어온 것이다. 물론 눈을 통해 들어오는 것도, 다른 감각을 통해 들어온 것도 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단어도 들어오지 않은 것이란 없다.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이 다 그러하다. 이렇게 나는 들어온 것들을 통 해 지식을 넓혀간다. 그 받아들이는 일은 흔히 공부 라 불린다. 많이 들어온 것을 많이 가두어 두는 것, 이것이 목표가 됨으로써 공부는 창고업과 비슷하게 된다. 공부하라는 말을 자식들에게 거의 강박적으 로 되뇌는 한국인들은 암암리에 이러한 창고식 공 부에 익숙하다.

들은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남아있지는 않다. 어떤 것은 들었는지 조차도 모른다. 주어 담을 능력에 한 계가 있기 때문이다. 들은 것을 모두 기억한다면, 그 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다. 어느 것은 듣고도 받 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음악이, 예를 들어 바흐는 논외로 두더라도 모차르트조차 전혀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은 이런 음 악에 의해 교육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다른 분야에 서도 비슷한 현상은 있는데,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극복하느냐가 공부의 과제가 된다. 이 상황에서는 “교육”이라는 말이 지식을 효과적으로 입고(入庫)하고 보관하는 것이 된다.

보관된 지식은 나에게 힘이 된다. 더 많은 지식은 더 많은 힘이다. 그러하니 더 많이 쌓아두지 않을 수 없다. 그 지식들은 문제들을 만났을 때 판단근거가 되고, 또 다른 지식을 생산하는 바탕이 된다. 마치 개개의 음들이 수많은 음계를 생산해 내듯이. 음계 를 조합하는 데에는 창조적 사고가 사용된다. 하지 만 개개 음들을 아는 사람들 모두가 새로운 음계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창고식 지식의 탐닉 속에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 진 능력에 대해 주목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무시하 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두세 살의 어린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말을 만들고, 심지어는 노래를 만드는 능 력은 가지고 있다. 물론 어른들은 그런 것들을 하찮 은 것이라 여기고 주목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저학 년 정도면 자신들의 놀이를 위한 노래를 직접 만든 다. 그런 노래를 통해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은 자신 들의 놀이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80년대 이전(?)에 만들어져 아직도 불리는 “신데렐라는 어 려서 부모님을 잃고요”라는 것이 그 한 예이다. 그 가사에는 “샤바샤바 아이샤바”처럼 뜻 모를 말도 있 고, 맨 마지막에 나오는 “1980년대”(이 부분은 세월 이 지나면서 많이 변함)와 같은 신데렐라와 너무 동 떨어진 연대가 등장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은 아이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것에 인간의 창조적인 것이 들 어 있는데, ‘논리적인 것’이 아닌, ‘만드는 것’에 있다. 창조적인 사람이 엉뚱한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기 존의 바탕과 무관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다른 지 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가 시작한 바탕이 이해 되지 않을 때 그는 외면당한다. 신데렐라 노래와 같 은 것이 바로 그런 단계의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단 계에 대한 이해나 관용은 천재를 자라게 하는 기본 환경이다. 이 단계를 지나고, 시행착오들을 거쳐서, 새로운 영역이 나타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한때 미숙했다고 여겼던 천 재를 뒤늦게 칭송한다.

이 초보적 창조단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즉 나는 밖으로부터 들어 온 것이 아닌, 내 안에서 스스로 창조적으로 언어나 지식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신데렐라 노래를 평 가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그것을 만들려고 하는 의욕을 볼 때 새로운 눈을 뜬다. 이 때 창고식 공부는 의문스러운 것이 된다. 창고식을 우리가 쉽게 수긍한 다면 그만큼 우리의 생각은 창조적인 것과 거리가 있 다. 일상의 것, 이미 아는 것, 이미 보관된 것, 바로 이 것들을 넘어서는 것이 새로운 눈을, 귀를, 생각을 열 어준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막상 만나게 되면 ‘말도 안 되는’, ‘유치한’, ‘하찮은’ 것으로 업신여기는 습관이 거의 자동적으로 일한다. 배워야할 것이, 또는 입고 해야 할 것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그런 무가치한 일 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천재”는 예술영웅의 명칭이다. 이 말은 “타고났다” 는 뜻도 있지만, 누구나 갖지 않은, 한 인간의 고유 한 능력을 인정하고 칭송하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의 탄생과 함께 한 인간이 생래적으로 가진 능력이 인 정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단의 것이 아닌, 단독인 간의 능력이다. 많은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을 해낸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천재”라 불리기 어렵다. 천 재라는 말은, 언급함이 없이, 개인이 가진 특이성이 나 특별한 능력을 인정한다. 천재는, 민족이나 국가 를 위해 분투하는 전쟁이나 정치 분야의 영웅과는 다르게, 집단과의 관련성이 약하다. 그러기에 천재 의 인정은 매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인 정이 집단으로부터 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 인이 어떤 불세출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집 단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천재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지 않는다. 최소한 아주 소수의 사람 들이라도 그를 천재로 인정해야 한다. 그냥 자기 혼 자 자신을 천재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천재가 아 니라, ‘외로운 사람’이다.

천재는 초보적 단계에서 미숙하다거나 낯설다는 이유로 수모 당하기에 알맞다. 외로움이 그의 동반 자이기 십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수모와 외로움을 의식하고, 사 람들이 인정하는 일정한 표준만을 연습하여 습득 하는 것이 최상이라 생각하기 쉽다. 창고식 사고를 하는 이들은 외롭지도, 유치하지도 않다. 그들의 노 력이 아주 진지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진지한 사람들이 위축당하는 환경이라야 천재들이 자라난다. 천재들은 교육되지 않는다. “천재”라는 말에는 교육되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도 들어있 다. 천재교육이란 천재들의 지식창고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돕는 것이다. 창고 는 필요한 만큼 그들 스스로 채운다.